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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주폭이..... 평소 바람따라 장기기증

작성일 2021.02.04

 

 
 

1987년 6월 30일 경남 함양의 성민보육원. 10세 최은대 어린이가 형의 손을 잡고 보육원에 왔다. 형제는 아버지의 잦은 폭력으로 그날 보육원에 맡겨졌다. 아이는 그때부터 16년간 보육원에 살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보육원의 신정찬(45) 원장은 "처음 봤을 때 눈이 아주 맑았고 과자 한 봉지도 친구들을 불러 나눠 줄 정도로 정이 많던 아이였다"며 "당시 보육원에 있던 60명 아이들 중 특히 말썽도 안 부리고 책 읽는 것만 유난히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경상대학교 정보통신학과 합격통지서가 보육원으로 날아왔다. 합격통지서를 받은 그는 원장에게 소원 한 가지를 이야기했다. "선생님, 저 컴퓨터 한 대만 사주세요. 공부 열심히 해서 꼭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요." 평소 바라는 것이 없었던 그의 말에 원장은 두말없이 컴퓨터를 사줬다. 이 대학 정보통신학과 서종태 조교는 "학교에서 본 그는 매일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에만 집중하는 학생이었다"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도 성실히 공부해 장학금도 탔고 평판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했고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다.

서울의 한 기업에 취직한 최은대씨는 2003년 보육원을 나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원룸에서 독립을 이뤘다. 최씨의 친구 이상민씨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쉬지 않고 책과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래밍 실력에 자신감도 넘쳤다. 그의 이력서에는 '정규직 아니어도 상관없음'이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신 원장은 "'돈이나 직함보다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창의적인 환경이 중요한 것 같다'면서 3년간 다녔던 첫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력이 좋아 국가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월급을 허투루 쓰는 일도 없었다. 5년 전에는 보육원을 찾아와 "원장님께서 차가 낡았던데 바꾸시라"며 덜컥 5000만원을 내놓아 원장이 손사래를 친 일도 있었다. 신정찬 원장은 "항상 웃는 얼굴에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며 "1년에도 5~6번은 꼭 보육원을 찾아와 선물도 주고 갔다"고 말했다.

어렵게 이룬 최은대씨의 꿈은 지난달 25일 오전 6시 3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골목길에서 허무하게 사라졌다. 술에 취해 시비를 걸던 남성 주취폭력자 주먹에 맞아 숨졌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이다. 범인 이모(34)씨는 양주 2병을 마시고 시빗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는 경찰에서 "나한테 욕을 하는 것 같아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고 진술했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유족은 최씨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던 생전의 뜻에 따른 것이다. 지난 2일 오후 서울대병원에서 그는 심장과 각막, 간을 누군가에게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서른다섯 나이였다.

2012. 12. 05 조선일보 이지은기자